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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문명의 종류~ 수메르 문명에 대해~
    사이언스&히스토리 2020. 3. 18. 10:27

    현대의 인간은 많은 나라와 인종으로 구분되어있지만

    인간의 역사 초반에서부터는 그렇지 않았을것이다

    원시인에서 문명을 만들고 발전하기까지

    많은 문명들로 이어져 오게 되었다

    이렇듯 인간에게 중요한 뿌리인 문명들에 대해 알아보게되었다

    그 중 수메르 문명에 대해 알아보자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이다.

    수메르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수메르인은 대략 기원전 5,500년에서 기원전 4,000년

    사이부터 수메르 지방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수메르 문명이 가장 융성했던 때는 기원전 3천년기로,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이 1000년의 기간을

    크게 초기왕조시대(2900?~2350? BC),

    아카드 왕조시대(2350?~2150? BC),

    우르 제3왕조시대(2150?~2000? BC)의 세 시대로 구분한다.

     

    그 후 기원전 2000년 쯤에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즉 아라비아에서 온 셈족계통의 아모리인이

    수메르 지방을 점령하고 고대 바빌로이나를 세움으로써

    수메르 문명은 국가 형태로서는 완전히 사멸되었으나,

    수메르종교와 문화의 흔적이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 및 문화 집단들의 신화와 종교 그리고 문화 속에 남아 있다.

     

    "수메르인"이란 말은 그들의 뒤를 이은 아카드인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었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웅 상 기가"검은 머리 사람들" 이라고 불렀고,

    그들의 땅은 키엔기르(Ki-en-ĝir) "수메르말을 쓰는 사람들의 땅" 이라고 불렀다.

    아카드어 "수메르"는 아마도 이것의 방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왜, 아카드인들이 이 남쪽 땅을 "수메르" 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의 "시날"(Shinar), 이집트의 "신그르"(Sngr),

    히타이트의 "산하르"(Sanhar)는 모두 "수메르"의 서방 방언으로 볼 수 있다.

     

    한때 언어학자들은 수메르어가 솀어족이 아닌

    다른 언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수메르 사람들이 외부에서 침입해온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후 고고학적 기록을 통해 초기 우바이드기에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한 이후에

    문화적인 단절 없이 그 문화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방에 정착한 수메르 사람들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풍부한 충적토로 비옥해진 땅을 경작하였다.

    당시에는 강우량이 현재 보다 적었기 때문에,

    척박한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려 한 모든 인종들의 도전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잘 관리하여

    농업용수와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수메르어에는 운하, 제방, 저수지등에 관련된 단어가 많이 발견된다.

    수메르인들은 북부지방에서 농업 기술을 습득한 뒤에 남쪽으로 내려온 농부들이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바이드 토기는,

    북부의 사마라 유적의 토기와 연속성이 발견된다.

    사마라 사람들은 티스리스 강 중류 지방에서

    최초로 원시적인 형태의 경작을 시작한 부족들이다.

    우바이드 유적과 사마라 유적의 유사성은

    라르사 근처의 텔 아웨이리 (1980년에 프랑스 발굴단에 의해 발굴됨)에서 발견된

    사마라토기와 유사한 전기 우바이드토기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북부 지방의 농부들은, 신전 중심의 사회구조를 만들어 내고,

    수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면서,

    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자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 우르 남무왕, 슐기왕 등의 우르 제3왕조가

    북부 메소포타미아까지 영향력을 미치면서

    마지막 수메르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미 수메르 지역은 아모리족이 대거 유입되면서

    솀어족의 성격이 더욱 진해져 있었다.

    아모리족은 후에 바빌로니아제국을 건설한다.

    중세에 라틴어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것처럼,

    설형문자가 계속해서 쓰이는 동안에는 수메르어도

    여전히 학교에서 종교적 언어로 가르쳐졌다.

     

    생태학적으로는, 수메르 땅의 염분의 증가로 인하여 농업 생산력이 감소하였다.

    농업 용수의 증발량이 많아 지면서 토양에 녹아있는

    염분이 증가한 것이 농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규모가 작은 도시부터 서서히 수메르 문화가 와해되어 간다.

     

     

    엘람인의 침략과, 이비 신 지배 하에서의 약탈로,

    이후 수메르는 다시 아모리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때 청동기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기원전 20세기~18세기의 아모리족 도시국가는

    수메르의 왕명 목록에 "이신 왕조"로 기록되어 있고,

    기원전 1730년 함무라비왕의 바빌로니아로 넘어간다.

     

    이 시기는 토양의 염분 증가로 인해

    남부 이라크지방에서 북부 지방으로 인구이동이 일어난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토양 염분 증가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경작된 토지에 배수가 잘 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조한 기후로 인해 수분이 증발되면서

    토양 속에 염분이 축적되었고,

    결국 수확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아카드 왕조와 우르 제3왕조 동안 밀보다 염분에 더 강한

    보리를 경작하기도 했으나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기원전 2100년~1700년 사이 인구는 거의 5분의 3으로 줄어들었다.

     

    수메르인은 매해 봄마다 수태 준비를 마친 대지에 씨를 뿌린 뒤 탐무즈의 부활제를 올렸다.

    그들은 탐무즈를 성장의 신으로서,

    대지의 여신이 탐하는 남성적인 힘의 상징으로서 숭배했다.

    이러한 풍년제 기간에는 모든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뿐 아니라,

    좋아하는 다른 남자와도 잘 수 있는 권리를 남편에게 인정받고는

    자유롭게 사랑의 상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하나 남편 이외의 연인의 정액은 밖으로 흐르게 하여 임신하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의 의무를 저버리기 때문이다.

     

    수메르 문명은 현재의 이집트나 아랍권의 조상문명이다

    고대의 장성했던 문명이며

    지금까지도 전해내려오는 수많은 대표적인 문명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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